언어공부[言葉の勉強]/제주 통대생의 육지 적응기

제주 통대생의 육지 적응기 _ 오... 벌써 쉬고 싶은 걸? _ 20230306

황구름 2023. 3. 6. 22:17

우선 이 글은 내 시리즈 최조로 사진이 없다.
 
왜냐하면 입사 후 2주 동안 사진을 찍을 마음의 여유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후후후...! 남의 돈을 버는 건 역시 쉽지 않구나!!
 
입사를 하고 약 2주가 흘렀다. 지난 화에 이야기했듯 혹여나 보안에 문제가 될까 봐 회사에 관련된 이야기는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나의 정신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오랜만에 일 다운 일을 하고 있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실업급여라는 꿀을 할짝할짝 핥아먹기를 6개월...!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차피 브레이크 제대로 걸린 인생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공부나 마저 해보자는 생각으로 짧은 기간 통대를 준비하고 제주대에 입학했다. 그 후 2년 동안 학생 신분으로 지냈으니 거의 3년 만에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 이 느낌을 감히 비교하자면... 마치 재입대와 같았다(참고로 우리 회사는 남자가 90% 이상이다). 분명 대학원을 입학하기 전에 사회생활을 해봤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등병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부장님이 등장하면 대대장님이 등장한 것처럼 놀라고 차장님이 등장하면 행보관님이 등장한 것처럼 놀라고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몸은 긴장해서 어버버... 정말 놀라운 첫 주였다. 더군다나 일본인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통역일을 하는 것 자체는 처음이기 때문에 내 일본어 실력이 어디까지 통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통역번역 대학원을 졸업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래도 통대 나왔다는 사람이 이 정도도 못하면 어떻하지?'
 
라는 그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부분을 스스로 지적하며 제 무덤을 파고 있었다. 2년 간 깨끗하고 정돈된 아나운서 발음만 듣다가 일반 분들의 속사포 회화를 듣자니 거기에도 적응을 못해 멘붕. 어느샌가 나는 의기소침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잘 알고 계시듯이 사람들은 혼자 무너지는 사람에게는 절대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다. 회사는 그런 사람을 보면 오히려 '아... 잘못 뽑았네'라고 후회한다. 어쨌든 나는 돈을 받기로 계약한 인력이니까.
 
그렇게 혼란한 마음을 품고 집 앞 초등학교에서 뛰던 어느 날. 아주 심플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날도 난 의기소침해 있었고 이렇게 가다가는 망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2년 동안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고작 적응을 못해서 이미지도 망치고 일 못한다는 사람 소리도 듣기는 정말 싫었다. 그렇게 1시간가량을 뛰다가 번뜩 든 생각은
 
'이렇게 망하나 저렇게 망하나.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겠다.'
 
이 심플한 결심은 나의 마음을 매우 편하게 만들어줬다. 우리 회사가 수습기간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긴장해서 실수하다가 잘리는 것보다는 그냥 내 맘대로 하다가 짤리는 편이 나을 거라는 계산이 선 것이다. 그러자 정말 놀랍게도 어깨에 힘이 많이 빠졌다. 스트레스가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출근하는 게 마냥 괴롭지는 않았다. 표정이 밝아지고 그런 나를 보는 아저씨들의 밝은 표정도 볼 수 있었다. 30대 중반에 그래도 꽤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이 글을 읽으면서 나의 멘탈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건 사실이다. 아직도 의연하지 못한 부분, 부족한 부분이 많고 때로는 내가 너무 애 같아서 스스로 실망하기도 한다.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왜 아직도 이런 일로 힘들어하는지 자책할 때도 많다. 달리기를 자주 뛸 때는 당연하게 박혀있던 굳은살들이 한동안 뛰지 않으면 싹 사라지는 것처럼. 내 마음의 굳은 살도 단련하지 않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만 같다.
 
그래도 재밌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비록 약한 나로 돌아간다 해도 반드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벨 100에서 50으로 떨어졌다고 해도 다시 레벨 70이 된다면 그 역시 성장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부족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까지 큰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니까.
 
놀랍게도 이 모든 고찰은 불과 2주 동안 이루어진 일이다.
 
이 글을 다 적고 나서 보니 살짝 웃음이 나기도 한다. 회사 그게 뭐라고...
 
다음에는 꼭 글과 함께 올릴 수 있는 사진을 찍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