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공부[言葉の勉強]/제주 통대생의 육지 적응기

제주 통대생의 육지 적응기 _ 일을 해봅시다 _ 20230226

황구름 2023. 2. 26. 21:26

#제주바다와맥주

제주도를 떠나온 지 2달이 흘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일본계 기업에서 통역일을 맡게 되었다.

 

12월 말에 제주를 떠나 여수를 들렀다가 본가로 돌아온 나는 우선은 정말 술을 무지막지하게 마셨다.

 

2년 간의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취업도 취업이지만 우선은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중반의 남자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가서 할 수 있는 일은 단언컨대 '음주' 밖에 없을 것이다.

 

오랜만에 집에와서 가족들과 한 잔, 고향 친구들과 한 잔, 또 다른 친구들과 한 잔, 한 번으로 끝내기 아쉬우니까 또 한 잔, 새해가 밝았으니 한 잔, 짜장면이 맛있으니 한 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 중 하나가 바로 술을 마실 명목을 찾는 일이다.

 

그렇게 정신 놓고 마시기를 2주. 나는 당연하게도 식도염에 걸렸다. 그렇게 위가 아파본 적이 처음이었기에 너무나 두려웠으나 결과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다.

 

사실... 술을 마시면서도 머릿속에는 오로지 취업에 대한 걱정뿐이었다(나중에 들어보니 식도염은 술보다 스트레스가 더 큰 원인이라고 하더라). 내가 이 나이에 이 실력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은 30분에 한 번씩 나를 괴롭혔다.

 

식도염은 내가 술을 그만 마시고 이력서를 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사람인, 잡코리아 같은 구인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로그인을 하고 경력을 손 보고 이력서를 고쳐썼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10년 전쯤 했던 고민을 또다시 반복하며 주기적인 현타가 왔으나 어차피 통역은 경력을 가지고 계약직으로 떠돈다고 생각하니 어느 정도 마음도 정리 됐다.

 

취업준비를 하는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면접조차 불러주지 않을 때는 너무 힘들었다. 면접까지만 가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이력서에서 뚝뚝 나가 떨어졌다. 왜지?라는 물음만 가지고 조금씩 이력서를 보강했다.

 

통역직은 파견회사 소속으로 파견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파견회사 메일에 이력서를 보내면 그 쪽에서 연락이 와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회사에 추천을 해주는 시스템이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도 몰랐기 때문에 조금 헤매기도 했다(일본어 통역 쪽은 이랬고 다른 언어는 잘 모르겠다). 혹시나 궁금한 사람들은 사람인, 잡코리아 같은 구직사이트에서 통역직을 검색해 보면 대략적인 시스템을 알 수 있으니 어떤 일이 있나 쓱 둘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사이트에서 통역직을 둘러보다 보면 아무래도 가장 많이 뽑은 분야는 의료통역(성형 관련)이었다. 나는 반도체 관련 기업을 가고 싶었기 때문에 의료통역은 과감하게 패스. 일본 현지에 갈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현지에서 일하는 공고가 뜨면 거기도 지원했지만 불러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16번째 기업에 지원을 했을 때 다행스럽게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왠걸. 예전에 넣어뒀던 번역 회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오전 10시에 샘플 테스트를 해보겠다는 메일. 아니 한 번을 안 불러주다가 어찌 그리 딱 겹쳤는지...!

 

어디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 쪽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괜찮다. 번역 테스트는 오전 10시. 통역직 면접은 오후 2시. 아침 일찍 회사 근처 카페로 가서 1시간가량의 번역 테스트를 마친 뒤 대충 점심을 먹고 오후 면접에 돌입. 번역 테스트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면접에서 바로 출근해 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뭐 사실 내가 잘했다기 보다는 타이밍이 정말 좋아서 합격했다고 생각한다. 마침 결원이 생겨서 통역을 찾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조건에 맞는 이력서가 등장한 것이다. 음... 그전에 지원했던 곳들은 경력이 있으신 분들에게 밀려서 떨어지기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곳은 신입을 뽑아주었고 덕분에 2달간의 취업활동을 마칠 수 있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솔직히 내가 잘해낼 수 있을지 생각하면 눈앞이 컴컴하다. 왜 이 공부는 하고 또 해도 이렇게 자신감이 뚝뚝 떨어지는 건지... 그래도 돈을 받기로 한 이상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해야지. 돈 벌고 커리어 쌓아야지. 그래야 내 목표도 이룰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블로그라 밝은 분위기로 가볍게 쓰고 싶었는데 키보드를 두들기다 보니 또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마도 이 시리즈에 회사 이야기는 거의 없을거다. 보안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거의 없을 테니까.

 

그 대신 나의 심적인 이야기나 통역번역 공부하는 이야기를 소소하게 적어볼까 한다.

 

아 진짜 밝게 시작하고 싶었는데... 마음이... 무겁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