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지[観察日誌]/본인관찰일지(에세이) 6

우리는 남에게 받은 상처들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_20211230

우리는 남에게 받은 상처들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제주로 내려온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그리고 빠른 듯 느렸던, 긴 듯 짧았던 2021년도 이틀 남았다. 연말이 되니 올 한 해 일어났던 이런저런 일들이 떠오르며 그와 함께 따라왔던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함께 떠올랐다. 그중에는 행복했던 감정도, 씁쓸했던 감정도, 따뜻했던 감정도, 쓸쓸했던 감정도 그리고 계속 지니고 있고 싶은 감정도, 이제는 버리고 싶은 감정도 있었다. 나는 꽤나 감정적인 사람이고 안타깝게도 지금도 나의 생활은 감정에 좌지우지될 때가 많다. 어른이 되면(언제부터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훨씬 성숙한 마음을 지니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내 마음은 하루에도 수 백번씩 이리저리 흔들린다. 분..

[에세이] 나는 그 날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다 _ 오사카 시리즈(3)

추억이란 참 재밌다. 이미 6년 전 일이기 때문에 기억 속에서는 많이 희미해져 있는데도, 그때의 감정만큼은 드문드문 짙게 남아 존재한다. 사진이라는 매개가 있으면 그 감정들을 기억해 내는 일은 훨씬 편해진다. 그 당시 내가 일본 워홀을 가기 위해 준비한 예산은 딱 200만 원이었다. 이 돈으로 비자 면접을 보러 가는 서울행 버스표를 끊고 비행기 항공권을 구매했으며(물론 편도) 오사카 시내까지 올 수 있는 전철 티켓을 샀다. 앞으로 묵게 될 셰어하우스의 보증금을 지불하고 한 달 치 월세를 내고 관공서에 가서 이런저런 등록(외국인 관련 등록이었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을 마치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은 60~70만 원 남짓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음 달부터 당장 월세도 내야 하고 생활비도 필요했었는데 그 ..

[에세이] 자판기의 추억 2편 _ 오사카 시리즈(2)

텐가차야 역(天下茶屋駅)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했는데 오사카 외곽 동네의 거리는 생각보다 복잡해서 초행길을 찾는다는 게 쉽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날도 밝았고 길도 오밀조밀하니 귀여워서 내가 좋아하는 '동네 탐방'을 한답시고 그 큰 캐리어를 끌고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는데 생각보다 집 찾기가 어려워 헤매는 사이에 해는 저버리고 이젠 정말로 길을 잃은 게 아닌가 싶은 상황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위험한 동네인 줄도 몰랐기 때문에 가로등도 많이 없는 주택가를 캐리어를 드륵드륵 끌어가며 한참을 헤매다 보니 배도 고프고 힘도 빠져서 점점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길에 익숙해졌지만 초행길로 가기에는 찾기 어려운 위치에 있던 집이었어서 점점 더 초조..

[에세이] 자판기의 추억 1편 _ 오사카 시리즈(1)

자판기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어떤 장면입니까? 이 질문을 듣는다면 나는 2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첫 번째는 군대에서 동기들과 항상 뽑아먹던 '커피자판기'. 두 번째는 오사카도착 다음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혼자 음료를 뽑아 먹었던 '무인 판매기'이다. 사실 여기서 군대 이야기를 길게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면서 거쳐간 평택역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을 기다리다 발견한 커피자판기를 보자 퍼뜩 그 두 가지 장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더랬다. 사실 지금에야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새내기, 군 복무 시절까지 나와 내 친구, 지인들은 항상 커피 자판기를 가까이했었다. 중학교 때는 주머니에 천 원 한 장이 귀하던 시절이었으므로 대개 준비물을 ..

[에세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사실은 나도 잘 보임)

나는 사람을 꽤나 잘 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섣부르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지만 적어도 그 사람의 색깔 정도는 곧 잘 구분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은 진한 보라색이네 꽤 독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저 사람은 옅은 노랑색이네 밝고 따뜻하지만 상처를 잘 받을 수도 있겠다. 저 사람은 어두운 초록색이네 한 고집 하겠어 처럼, 나름의 마음 속 룰을 통해 그 사람의 느낌을 받아들이는 편이고 그 사람을 조금 알고 지내다보면 상당수 맞아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가장 잘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눈이다. 눈을 보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 사람이 입으로 얘기해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나에게 보내주는 것이다. 요즘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

[에세이] 뜻 밖의 선택이 주는 뜻 밖의 즐거움

내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지. "일단 날씨가 너무 좋고... 바람이 시원하니까요...?" 정말이다. 이건 어설픈 김현중 코스프레가 아니야. 시기는 9월 중순을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나는 종로 3가에서 수업을 듣고 3시에 끝나 저녁까지 시간은 충분했고, 내 눈에 '따릉이'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2주 전에 따릉이 1달 이용권을 결제하고 바로 태풍이 와서 한 번도 이용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정처 없이 걷는 일, 특히 내가 모르는 장소를 정처 없이 걷는 일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게다가 모르는 곳에서 충분한 시간을 정처 없이 걷는다는 것은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충분 그 이상의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