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지[観察日誌]/본인관찰일지(에세이)

[에세이] 나는 그 날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다 _ 오사카 시리즈(3)

황구름 2021. 12. 7. 00:45

#생애 첫 도톤보리

 추억이란 참 재밌다. 이미 6년 전 일이기 때문에 기억 속에서는 많이 희미해져 있는데도, 그때의 감정만큼은 드문드문 짙게 남아 존재한다. 사진이라는 매개가 있으면 그 감정들을 기억해 내는 일은 훨씬 편해진다. 그 당시 내가 일본 워홀을 가기 위해 준비한 예산은 딱 200만 원이었다. 이 돈으로 비자 면접을 보러 가는 서울행 버스표를 끊고 비행기 항공권을 구매했으며(물론 편도) 오사카 시내까지 올 수 있는 전철 티켓을 샀다. 앞으로 묵게 될 셰어하우스의 보증금을 지불하고 한 달 치 월세를 내고 관공서에 가서 이런저런 등록(외국인 관련 등록이었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을 마치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은 60~70만 원 남짓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음 달부터 당장 월세도 내야 하고 생활비도 필요했었는데 그 당시 내 안에 있던 가장 강렬한 감정은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 넘치는 설렘이었다. 29살에 워킹홀리데이 막차를 탔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여정이 두렵기보다는 각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철이 없었던 것도 같다. 뭐든지 하면 되지라는 막연한 자신감과 이를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한층 더 근거없는 나에 대한 신뢰. 아무것도 없었던 내가 가지고 있던 딱 2가지였던 것 같다. 생계 비용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구했을 법도 하지만 내가 가장 먼저 선택한 일은 관광이었다. 물론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치는 부릴 수 없지만 걷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지하철 구간 패스를 끊었기 때문에 교통비 걱정은 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원하는 역에 내려서 정처 없이 걸으며 그 장소를 구경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여행지에 가도 관광명소에 큰 관심이 없는 나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도톤보리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었고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만화에서 봤을 때는 가끔씩 사람이 빠져 죽기도 한다는, 오사카를 가로지르는 그 거리를 봐야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도시와 닮은 듯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그 미묘한 갭이 느껴지는 거리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오사카에서 본격적인 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그닥 찾지 않는 거리가 됐지만(외국인 관광객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래도 나에게 오사카가 대도시라는 걸 알게 해 준 거리였다.

 

 분명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구불구불 복잡하게 이어진 거리와 그 안에 빽빽하게 차있는 사람들. 대한민국에서도 명동을 제일 싫어하는 나지만 사방 가득한 일본어 간판들과 오사카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가 나를 걷게 해줬다. 그때는 코로나도 없었으니까 다들 마스크도 없이 어깨를 부딪혀가며 어딘가로 걸어가기 바빴다. 그 당시에 나도 분명히 어딘가로 걸어가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 발걸음에는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을 것이다. 왜 그렇게 한치의 두려움도 없었을까. 아니 정말로 단 한 줌의 두려움도 없었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확신이 내 안에 있었다. 내 앞길에 거칠 것은 없다. 다 잘 될 것이다. 이런 마음은 훗날 여러 가지 일들을 겪어가며 꺾이고 무뎌지지만 분명 그날의 나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그저 공기가 맛있고 거리가 즐거웠으며 마음이 가벼웠다. 세상사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의 마음이었다 하더라도 지금의 나는 그날의 내가 많이 그립고 부럽다. 그날의 내가 부러워하는 지금의 나의 모습이 있을까.

 

 앞으로 반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나는 제법 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인생을 바꿀만한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소소하고 시시한 일들이다. 특히 일본에서의 생활은 나의 나약함들이 드러났던 시기이기도 해서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들 투성이다. 하지만 지난날을 돌아보고 떠올리고 다시 정리하면서 그 당시에만 느껴졌던 감정들이 다시금 살아나곤 한다. 분명 내 인생에 중요한 감정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생활에 치여 묻혀있던 감정들. 이를 되돌아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