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 3

[에세이] 나는 그 날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다 _ 오사카 시리즈(3)

추억이란 참 재밌다. 이미 6년 전 일이기 때문에 기억 속에서는 많이 희미해져 있는데도, 그때의 감정만큼은 드문드문 짙게 남아 존재한다. 사진이라는 매개가 있으면 그 감정들을 기억해 내는 일은 훨씬 편해진다. 그 당시 내가 일본 워홀을 가기 위해 준비한 예산은 딱 200만 원이었다. 이 돈으로 비자 면접을 보러 가는 서울행 버스표를 끊고 비행기 항공권을 구매했으며(물론 편도) 오사카 시내까지 올 수 있는 전철 티켓을 샀다. 앞으로 묵게 될 셰어하우스의 보증금을 지불하고 한 달 치 월세를 내고 관공서에 가서 이런저런 등록(외국인 관련 등록이었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을 마치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은 60~70만 원 남짓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음 달부터 당장 월세도 내야 하고 생활비도 필요했었는데 그 ..

[에세이] 자판기의 추억 2편 _ 오사카 시리즈(2)

텐가차야 역(天下茶屋駅)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했는데 오사카 외곽 동네의 거리는 생각보다 복잡해서 초행길을 찾는다는 게 쉽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날도 밝았고 길도 오밀조밀하니 귀여워서 내가 좋아하는 '동네 탐방'을 한답시고 그 큰 캐리어를 끌고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는데 생각보다 집 찾기가 어려워 헤매는 사이에 해는 저버리고 이젠 정말로 길을 잃은 게 아닌가 싶은 상황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위험한 동네인 줄도 몰랐기 때문에 가로등도 많이 없는 주택가를 캐리어를 드륵드륵 끌어가며 한참을 헤매다 보니 배도 고프고 힘도 빠져서 점점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길에 익숙해졌지만 초행길로 가기에는 찾기 어려운 위치에 있던 집이었어서 점점 더 초조..

[에세이] 자판기의 추억 1편 _ 오사카 시리즈(1)

자판기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어떤 장면입니까? 이 질문을 듣는다면 나는 2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첫 번째는 군대에서 동기들과 항상 뽑아먹던 '커피자판기'. 두 번째는 오사카도착 다음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혼자 음료를 뽑아 먹었던 '무인 판매기'이다. 사실 여기서 군대 이야기를 길게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면서 거쳐간 평택역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을 기다리다 발견한 커피자판기를 보자 퍼뜩 그 두 가지 장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더랬다. 사실 지금에야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새내기, 군 복무 시절까지 나와 내 친구, 지인들은 항상 커피 자판기를 가까이했었다. 중학교 때는 주머니에 천 원 한 장이 귀하던 시절이었으므로 대개 준비물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