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공부[言葉の勉強]/제주 통대생 일기

2021.04.12 통번역대학원 입학 후 1개월 하고도 12일

황구름 2021. 4. 12. 19:58

#벚꽃노을#제주대학교

제주대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하고 1개월 하고도 12일이 지났다.

 

애초에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들어왔지만...

역시 가끔은 자신감을 잃기도 하고

가끔은 짧게만 느껴지는 2년동안 충분히 성장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를(애초에 공부를 싫어하는 인간이)

오로지 실력향상만을 위해서 깊게 몰두해서 할 수 있다는 점은

통번역대학원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지 않을까?

 

1달 조금넘게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은

(제주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후기이므로 다른 통번역대학원과는 다를 수 있음)

 

1. 철저하게 실용주의적인 수업이 주를 이룬다.

 

애초에 학문을 탐구하기 위한 입학이 아닌

현장에 나가서 당장 통역이 가능하도록 기술을 지도해주는 학교인 만큼

1학년인 현재는 순차통역을 위한 훈련과정으로써

노트테이킹과 청취 실습, 구문 번역(ST) 등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교수님들의 지도방식 역시 실용적인 부분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가장 만족스러운 점 중 하나는

'통역과 번역을 대하는 태도'부터 차근차근 알려준다는 점이다.

 

내가 통번역대학원을 간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아니 요즘 구글이 다 알아서 해주는데 가서 뭐하게?"

 

엄청 열 받는 말이지만 통번역에 대한 확신을 떨어트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통번역 대학원에 와서 교수님들의 말을 듣고 실제로 현역으로 활동하는 선배들과의 만남을 통해

많은 부분이 해소됐고 확신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의 영향으로 통번역 업계가 힘든 건 사실인 듯)

 

2. 자신의 약점을 파악하고 지도를 받을 수 있어서 기쁘다

 

당연한 말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언어를 공부하는 많은 분들은 자신의 현재 위치를 가늠하기 상당히 어렵다.

(저만 그랬다면 죄송합니다)

 

대충은 들리고

어느 정도 말할 수 있고

한자를 보고 의미는 유추할 수 있으니까

이 정도면 뭐 괜찮지~

 

언어영역만큼 자기 합리화하기 쉬운 분야도 없다.

(물론 언어영역만큼 엄격한 분야도 없다)

 

사실 발전을 하고 싶다고 해도 그 방법이 한정적이어서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보고 따라 하거나...

결국엔 점수다 싶어서 학원을 다니거나...

둘 다 해봤는데 뭐 완전 틀린 방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원은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기관이다 보니

보다 세심하고 철저하게(가끔은 아프게)

나의 장단점을 파악해주고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얼마 전에 교수님과의 면담이 있었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나를 자세히 봐주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어 무척 기뻤다.

그리고 실제로 이 업계에서 위상이 있으신 만큼

그 해결책도 현실적이다.

또한 단점을 짚어줄 뿐만 아니라

장점을 칭찬해주는 점이 굉장히 기뻤다.

 

성격상 칭찬받는 걸 좋아하지만 쑥스러워서 손바닥을 휘휘 내젓는 스타일(피곤한 스타일)인데

나의 어떤 점이 강점인지 말씀해주셨을 때

약간의 객관적인 확신이 생겨서 기뻤다.

 

어쨌든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고

본인의 욕심보다 학생의 성장에 중점이 두고 계신다는 점은

엄청난 메리트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졸업한 대학(학사)에서 그런 교수님 만나본적도 없고...

 

3. 숙제가 많다. 근데 더 많아진다고 한다. 공부에 치인다.

 

나는 30대를 훌쩍 넘긴 대학원생이다.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열심히 공부해본 적이 그다지 없다.

심지어 고3 때도...

(그렇다고 대학원 시험이 만만 하다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나름 일본어를 10년 정도 독학으로 꾸준히 공부했고 워홀 경험도 있습니다

JLPT N1은 너무 당연하고요)

 

하지만 제주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

태어나서 가장 치열하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어니까 망정이지

만약 회사에서 업무 공부를 이렇게 하라고 했다?

퇴사했다.

 

처음에는 기세 좋게 달려들었지만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거나 주말에 약속이 있어 예습, 복습을 못하면

밸런스는 바로 무너지고 다음 주 수업시간에 여실히 드러난다

 

심지어 같이 수업을 받는 동기분들은 다들 실력자여서

객관적인 창피함도 감수해야 한다.

물론 본인의 자격지심일 뿐 동기들은 힘이 돼 주지만...

(항상 고마워요 여러분)

 

어쨌든 일본에서 짧은 워킹홀리데이 경험만을 지닌 나에게는

한 수업, 한 수업이 도전의 연속이다.

항상 새로운 기사, 문장들을 만나기 때문에

복습은 가능하지만 예습이 어려운 과목들도 많다.

하나의 수업 진도를 따라간다고 발버둥을 치다가

다른 수업과의 밸런스가 무너져버리면

그만큼 허망할 때도 없고...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 열정이 필요하고

그 와중에 페이스 조절까지 해야 하는 생활이 이어진다.

 

그러니 제발

'일본어가 정말로 좋은 분들이 와주세요'

 

이 전제조건이 맞는다면

당신에게는 천국일 겁니다.

 

4. 어쨌든 제주도가 기가 막히다.

 

난 솔직히 엄청난 강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 제주 토박이 분들이 꽤 계셔서 큰 공감은 못 받고 있음

진짜 제주도가 너무 예쁘다.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피고

음식은 맛있고

동서남북 어느 지역을 가든 그곳만의 다른 매력이 있고

길냥이, 댕댕이도 많고

하늘은 깨끗하고 바다는 푸르고(적당히가 아니라 정말로 푸른 바다)

 

평일에 받은 스트레스는 주말에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거나

바닷가 근처로 넘어가서 회에 소주 한 잔 걸치면

사르르 녹아서 없어진다.

(물론 남겨진 숙제는 나의 몫)

 

최근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제주 한 달 살기가 꿈이었는데 네가 이뤄주는구나"

 

그 정도로 한 번 살아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어가 좋고, 훌륭한 교수님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고, 제주도가 좋다면

망설일 필요는 없는 학교다.

 

앞으로 종종 통대생의 생활을 주제로 끄적여볼까 하는데...

제발 1년 뒤에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