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사실은 나도 잘 보임)
나는 사람을 꽤나 잘 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섣부르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지만 적어도 그 사람의 색깔 정도는 곧 잘 구분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은 진한 보라색이네 꽤 독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저 사람은 옅은 노랑색이네 밝고 따뜻하지만 상처를 잘 받을 수도 있겠다. 저 사람은 어두운 초록색이네 한 고집 하겠어 처럼, 나름의 마음 속 룰을 통해 그 사람의 느낌을 받아들이는 편이고 그 사람을 조금 알고 지내다보면 상당수 맞아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가장 잘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눈이다. 눈을 보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 사람이 입으로 얘기해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나에게 보내주는 것이다.
요즘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할 때 정작 말의 내용으로 전달되는 부분은 10%가 되지 않고 80%이상은 몸짓, 즉 바디 랭귀지를 통해 전달 된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이는 실제로 세일즈 회사에서도 자주 교육하고 사용하는 방법이며 나 또한 교육 받고 팀원들에게도 교육 한 적이 있었던 내용이다. 고객에게 효과적으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보다 바디랭귀지 즉 눈으로 보고 느끼는게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를 어느정도 사람들을 파악하는데 사용한다. 우선 그 사람의 전체적인 자세나 몸짓 자주 사용하는 제스처 등을 보고 대략적인 색을 파악한 후 목소리에 무게나 자신감, 말투 사용하는 단어 등을 들으며 명도와 채도를 입혀가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인격체이고 특별한 존재지만 제 3자에게 보여주는 자신의 모습은 어느정도 그 패턴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얕은 본성까지만 파악하는데는 정말 유용한 방법이다(적어도 이 사람이 내 통수를 칠 사람인지 아닌지는 구분하기 편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왔던 직업의 특성상 계속해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그들을 관찰해야 했기 때문에 이 스킬은 나름의 발전을 거듭해 가고 있다.
어쨌든 그렇게 나름 남에 대해 잘 파악한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뜨끔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발단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의 한 마디였다.
"너 왜 또 그런 표정을 짓고 있냐?"
흠칫 놀랐다. 물론 내 오래 된 친구이기 때문에 나 역시 그 친구가 어떤 상태이냐에 따라 기분이나 생각을 어느정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나 역시 쉽게 파악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름 충격이었다. 그래서 역시 10년 이상 나를 만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ㅋㅋ 너 엄청 단순하잖아 눈만 보면 보인다"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서로가 맞지 않았으면 아마 지금까지 자주 만나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나는 한가지 작은 의문을 품게 됐다.
'혹시 나랑 적당히 친한 사람들이나 직장동료들도 쉽게 나를 파악하는게 아닐까?'
나 역시 내가 단순하다는 사실을 어느정도는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나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면 어떻게하나라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지 무슨 호들갑이냐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초년생 시절, 아직 때가 덜 묻었을 때의 쓰린 기억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쉽게 파악하는 일이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물론 내가 친해지고 싶은 직장 동료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건 매우 즐거운 일이지만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직장 동료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간파 당하는 것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그를 이용해 뒷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뒤에서 수근거리는 상황까지 발전한다면 그건 문제가 되고 불쾌해진다.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벌어진 일이었으며 나 뿐만 아니라 우리 팀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었었기 때문에 그 뒤로는 행동거지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듯 조금은 씁쓸한 기억 덕에 그 뒤로는 나름 나를 잘 숨기고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의 그 한마디에 퍼뜩 내가 요즘 다시 풀어졌나싶은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보이는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상대방도 내가 보일 수도 있다'
이번 일로 당연하지만 무심코 잊어버리고 마는 이 진리를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터놓고 살 이야기 나누기 힘든 이 세상이 팍팍하고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